5.18 광주 민주화운동 원인과 배경 정리,지원제도,국가유공자혜택 정리
안녕하세요 . 오늘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원인과 배경 정리,지원제도,국가유공자혜택 정리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놓칠 수 없는 알짜 정보가 가득하니 끝 까지 읽으며 잘따라오세요^^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 다가오면서 민주화 항쟁으로 희생되신 많은 분들을 기리는 기념식 행사도 열릴 예정입니다. 최근에는 몇몇 국회의원들의 5.18 유공자에 대한 망언으로 인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많은 이목이 집중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라남도 광주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인 5.18 민주화 운동의 모든것을 지금부터 함께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란 사건을 정리하며, 왜 이런 비극이 생겼는지,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등에 대해서 다시 밝혀 봅니다.
이 글은 5.18 광주항쟁 정리를 위한 글이므로 자세한 묘사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의미
1980년 5월 광주 일원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하여 군부 등에 의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두환 등 신군부 쿠데타세력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학살 범죄가 일어나기도 했던 사건이며 광주민중항쟁, 광주민주항쟁, 광주학살, 광주사태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 원인과 배경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라를 지키던 부대를 빼돌려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후 1979년 전국적인 독재 반대 운동으로 정권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부산, 마산에서 큰 규모의 시위(부마항쟁)가 일어나자 박정희 정권의 강경파는 학살진압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시해되며 18년간의 독재 기간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해 12월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를 빼돌려서 박정희와 똑같은 수법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5.18 정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요약 정리 원인 배경)] / ⓒ 국군보안사령부, 편집 www.kiss7.kr)
전두환, 노태우 등은 5월에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북괴남침설을 만들었습니다. 보수 정치인과 추종 세력이 전쟁 위협 분위기 조성을 통해 상대를 제거하는 수법은 수십 년도 더 된 수법이며, 현재도 계속 시도 중입니다.
쿠데타 세력은 북괴남침설을 흘리며 계엄령을 선포하고는 국내 반대 세력을 모두 잡아넣으려고 했습니다. 이에 국민들이 저항하자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확대하고 반대 학생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려고 합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등장한 군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사망과 함께 붕괴됩니다. 이를 틈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이 가시화 되었습니다.

민중운동 및 반군부 세력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해 더욱 후퇴하고 억압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정리를 위해서는 21일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날 진압 부대는 시민 2명을 살해했고, 부상자 또한 속출했습니다. 추가 투입된 20사단 병력과 대형 헬기까지 등장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날, 공수부대 진압 작전에서 시민 4명이 사망했는데, 그 후 공수부대는 전쟁을 하듯 집단 발포까지 시작했습니다. 빌딩 위에서는 민간인을 조준 사격하기 시작했고, 이에 격분한 시위대는 무장을 결심하게 됩니다.
결국 시민군은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냈으며 시가전도 벌어졌습니다.
([5.18 정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요약 정리 원인 배경)] / ⓒ 518.org, 편집 www.kiss7.kr)
22일, 광주는 포위되고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광주 이외의 지역에는 북한의 사주를 받는 과격 시위가 발생했다는 가짜 뉴스가 나가고, 보수 언론들은 광주에 빨갱이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도록 선동했습니다. 하지만 광주시민은 진실을 알릴 수가 없으니 일방적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엄군이 잠시 후퇴하면서 그날 밤부터는 소강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더 많이 집결했고, 진압으로 살해당한 시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들은 도청에 태극기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20사단이 다시 진격하며 사격을 해서 주민 8명이 죽게 됩니다.
([5.18 정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요약 정리 원인 배경)] / ⓒ 518.org, 편집 www.kiss7.kr)
23일, 시위대와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도시를 바로 잡기로 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 정리 시기에는 시민들이 도시를 청소하고, 무기도 스스로 회수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때가 타협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으나, 질서를 보여주는 시민군에 비해 그럴 생각이 없는 신군부의 차이만 드러날 뿐입니다. 마침내, 지원동에서는 공수부대가 버스에 총격을 가해서 17명이 집단 학살당하는 상황으로까지 번졌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리
5월 17일, 진압부대에 쫓기다가 대학생이 추락해 숨지면서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어느 한 곳을 본보기 삼아 진압한 후 전국을 평정하려던 신군부는 호남에 공수부대를 투입했고 각 대학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5월 18일 전국적으로 계엄령을 확대하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됩니다. 수도권의 신군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점령하고 상대 정치인들은 잡아넣기 시작합니다.
한편 전남대학 앞에서는 학생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크게 충돌하는데, 공수부대는 학생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5.18 정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요약 정리 원인 배경)] / ⓒ 518.org, 편집 www.kiss7.kr)
19일, 시민들도 폭행당하는 과격한 진압에 항의하는 시민들까지 늘어나면서 충돌이 더 격해졌습니다. 쿠데타 세력은 제7공수여단에 제11공수여단까지 추가 증원했습니다. 이들은 대검을 꽂고 학생과 시민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북한군을 막으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군대로 국민을 때려잡는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5.18 정리를 하자면, 18일 과잉진압으로 시민들까지 항거하게 만든 사태는 19일에 실탄 사격을 하면서 더 커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고등학생이 부상을 입으며 점점 최악이 되었습니다.

([5.18 정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요약 정리 원인 배경)] / ⓒ 518.org, 편집 www.kiss7.kr)
20일, 이제는 고등학생까지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택시와 버스는 공수부대를 막아서서 경적 시위를 했고, 시민들은 금남로, 충장로 등에서 군대와 대치했습니다.
그러자 3공수여단, 11공수여단에는 실탄이 지급되었습니다. 양측의 충돌은 더 과격해지고, 마침내 경찰 4명이 사망하는 사건과 광주역 앞 실탄 발포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진압 부대는 실제로 시민을 향해 실탄을 퍼부었고, 그 과정에서 시민 수 십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 과정은 당시 군부가 의도적으로 실탄 학살을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전개과정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자 전두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군부가 군부를 장악하였고,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자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일으킵니다.

12.12 군사반란이 만든 계엄령과 대학교들의 방학으로 대처는 늦게 나타났으며 대학들이 개학을 맞이한 3월 이후 안개정국에 대한 사항이 알려졌고, 1980년 4월부터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두환의 군사독재에 맞서 일어난 시위가 진압군과 격한 대립을 벌인 끝에 광주에 진입하려는 진압군과 광주시민들의 총격전으로 발전했고, 결국 진압되지만 수많은 수상자가 발생하였으며, 군사정권의 인권탄압과 민간인 살해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하여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함으로써 종결되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리
24일, 제11공수부대는 원제 마을에서 소년들에게 총격을 가해서 4명을 살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11공수부대와 전투교육사령부 부대는 자기들끼리 오인 사격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날 9명이 사망했는데, 그들은 마치 분풀이를 하듯 민가를 덮쳐서 4명의 청년을 처형했습니다.
25일, 전국에서는 어떻게든 타협을 시키려고 야당 정치인과 종교계 인사들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광주 내부에서는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범죄예방을 위해 질서 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5.18 정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요약 정리 원인 배경)] / ⓒ 518.org, 편집 www.kiss7.kr)
26일, 천주교 등 종교계에서는 시민군도 설득하기 시작했고, 계엄군이 덮치지 못하도록 탱크를 몸으로 막았습니다.
하지만 진압 부대는 다시 시내로 진입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광주 내의 시민군도 이제 마지막 시간임을 깨닫고는 어린 학생과 약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죽을 운명인 것을 그들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울분을 삼키며 집에 작별 인사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진압부대는 그것조차 못 하도록 시내의 모든 전화선을 차단했습니다. 이것은 최종 공격을 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5.18 정리 5.18 광주민주화운동 요약 정리 원인 배경)] / ⓒ 518.org, 편집 www.kiss7.kr)
27일, 드디어 진압군은 광주 재진입 작전을 실행합니다. 탱크를 앞세워서 도시로 들어선 그들은 도청을 완전히 포위해버렸습니다. 금남로 등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시민군은 투항할 것인지, 결사 항전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반국가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행동이 수상한 사람을 잡아 진압부대로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시민군에게 1만여 발의 총탄이 쏟아지고, 일방적인 공격으로 무력 진압을 당하게 됩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 피해상황과 결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정리의 마지막으로 피해 상황을 보자면, 사망 163명, 행방불명 166 명, 부상으로 인한 사망 101명, 부상자 3139명 등 총 5천여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해서, 연행과 구타, 고문, 그리고 모욕적인 강압으로 입은 정신적 피해도 엄청납니다. 이들은 일본군이 독립군에게 하던 고문과 모욕을 국민을 상대로 저질렀습니다.
연령 별로는 20대, 30대가 가장 큰 피해를 봤지만, 14세 이하도 8명이나 됩니다. 좌경화된 시위대라고 누명을 씌우는 자들도 있지만, 피해자의 직업을 보면 학생, 자영업자, 회사원, 공무원까지 있었으니 시민 전체의 항거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보수단체와 보수당, 보수 언론은 그들을 모욕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역주의에 사로잡혀서 여기에 동조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주항쟁을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는 날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지원제도
등록 절차 및 인원

광주광역시에 설치된 [5.18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심의 위원회]에서 보상을 받은 사람이 국가 보훈처에 등록신청을 하면 보상사실 확인 등의 절차를 걸쳐 유공자로 등록합니다.
유공자 보상 및 복지
5.18 유공자(유족)의 경우 행정안전부(광주광역시)의 [5.18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심의 위원회]에서 최소 5백만원에서 최대 3억원의 일시금(평균 5,300만원)이 지급되었으며, 보훈처에서는 별도의 금전적 지원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의료지원 및 교육지원 등 기타 지원은 국가 유공자와 동일한 수준으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 가산점 제도
국가유공자는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관련 법률에 따라 5~10%의 가산점을 받고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관련 영화

대한민국의 지금을 있게한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기념하며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세계사에 있어 대표적 민주화 사례로 거듭난 만큼 우리 후손들이 유공자분들을 잘 모셔서 그 분들의 피와 땀이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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